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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BOOK

한동일의 공부법 저자 한동일

30년 공부 끝에 로타 로마나 700년 역사상 930번째 변호사가 된
한동일의 특별한 공부법

초중고교를 졸업하고 신학교와 대학원에서 10년,
로마로 유학 가서 10년, 도합 30년 넘게 공부한 한동일 변호사.
그에게 공부한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동양인 첫 바티칸 변호사이자 대학교수이며 베스트셀러 『라틴어 수업』의 저자인 한동일 변호사. 그는 공부에 이골이 난 사람이다. 평범한 사제의 길을 걷다 로마로 유학 가서, 교황청에서 설립한 라테란대학에서 교회법을 공부하고 박사학위를 받은 뒤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의 변호사가 되었다. 로타 로마나 변호사가 되는 길은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라틴어를 비롯해 여러 유럽어를 유창하게 구사해야 하고, 사법연수원 3년 과정을 마친 후 합격률 5∼6퍼센트에 불과한 자격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이 같은 이력만으로도 그간의 공부가 얼마나 지난했을지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게다가 그는 30여 년 동안 학생 신분으로 살아왔다. 초중고교를 졸업하고 신학교와 대학원에서 10년, 2001년 로마로 유학 가서 다시 10년을 공부했다. ‘공부하는 노동자’를 자처하며 치열하게 살아온 그에게 공부한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이 책 『한동일의 공부법』에서 저자는 이렇듯 화려한 이력과 어학 실력으로 치환되는 공부가 아닌 ‘목적을 정화하는 공부’를 제안한다. 자기 주변을 에워싼 세상에 이로운 일을 하고 싶은 마음으로 공부의 목적을 정화하면 본질과 핵심을 깨닫는 진짜 공부가 시작된다는 것. 그 과정에서 개인적 소망의 실현과 성취가 자연스럽게 따라올 뿐 아니라 성숙한 인간이 되는 중요한 계기도 만들어질 수 있다. 저자는 공부가 단순히 머리로 하는 노동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마음 수련의 과정과 같다고 말하며, 억지로 하는 공부가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 자신을 격려하며 앎의 기쁨을 깨달아가는 진짜 공부를 시작하라고 독려한다. 지금 방황하는 10대 청소년들, 각종 시험을 준비하는 20대 대학생들, 한 분야를 깊이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자신만의 공부 철학과 태도는 물론 공부하면서 겪을 수 있는 불안함과 암담함, 좌절과 실패를 극복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격려와 응원의 메시지를 전한다.


‘공부 방법’이나 ‘공부 기술’보다
‘목표 설정’이나 ‘가치 추구’를 생각하는 공부를 논해야 할 때

“어떻게 공부했습니까?”
2017년에 출간한 『라틴어 수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저자는 각종 인터뷰와 강연회에 설 기회가 많았는데 그때마다 ‘공부법’에 관한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신학, 철학, 법학, 유럽사 등 그가 공부한 분야나 하는 일에 관한 질문보다 “어떻게 공부했는가?”, “공부 잘하는 비결이 뭔가?”,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은가?” 등 그의 공부 비결을 물어보는 질문이 유독 많았다. 처음에는 왜 자신에게 그런 질문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 침묵하다가 ‘시험 잘 보는 기술’을 익히는 공부에 시달리는 10대, 20대 학생들을 보며 자신의 공부 경험을 나누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자신이 방황하던 시절에 책 속의 좋은 글귀를 보고 힘을 얻었던 것처럼 지금의 청년들에게 용기를 주고 힘이 되는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이 책이 그 결과물이다.
저자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공부의 비결을 물을 때면 대부분 기술적인 방법을 궁금해하기 때문에 만족스러운 답변을 내놓기 힘들다고 말한다. 하나의 공부에는 백 가지 기술이 존재할 수 있고, 또 누가 하느냐에 따라 공부 기술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공부하고 이를 토대로 하나의 단계를 매듭짓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면 전략이 필요하다. 저자는 이제는 전술에 해당하는 ‘공부 방법’이나 ‘공부 기술’보다는 전략에 해당하는 ‘목표 설정’이나 ‘가치 추구’를 생각하는 공부를 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해도 혼자서 공부한 것 그 자체만으로는 자아 발견이나 자아 성장 이외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 그다음 단계, 즉 자신의 공부로 이룬 성취를 사회를 위해 활용하고 펼칠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것. 이 단계를 거쳐야 비로소 힘들고 어려운 공부가 개인의 성장을 넘어서는 보람과 기쁨으로 연결될 수 있다.


각자 마음속에 불꽃처럼 이글거리는
아지랑이를 들여다보라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저마다의 걸음걸이가 있고, 저마다의 몸짓이 있다.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제의 자신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이다. 그리고 아직은 정확히 모르는 자신만의 걸음걸이와 몸짓을 파악해나가는 일이다. 저자는 각자 마음속에 불꽃처럼 이글거리는 아지랑이를 들여다보라고 조언한다. 나는 어떨 때 상처받고 어떻게 그것을 극복하는지,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고 잘하는 것은 무엇인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등 마음속 아지랑이를 들여다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진짜 내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타인이 그려놓은 내 모습에 좌절하거나 상처받지 않는다는 것. 내 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채 공부에 매달린다면, 결정적 순간에 다시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가게 될 수 있다. 결국 공부한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은 각자 마음속의 아지랑이를 보는 일이다.
저자는 지금 청년들을 힘들게 하는 건 방황하고 시행착오를 겪을 시간을 주지 않고 오로지 ‘노오력’하라고만 몰아세우는 세태라고 진단한다. 자기 공부에 대한 사명이나 당위를 치열하게 고민하는 방황의 시간을 거친 끝에 내린 결론이어야 스스로 납득하게 되고 목표 달성을 위해 정진할 힘도 생긴다. 오늘날 우리는 이런 시간조차 낭비라 생각하고 일찌감치 낙오나 실패의 낙인을 찍는다는 것. 말로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면서 정작 넘어지면 일어설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 저자는 야구에도 스리아웃이 있는 것처럼 인생을 살아가면서 방황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오기 마련이라 말한다. 무엇보다 방황의 시간이 중요한 이유는 큰 역경이나 좌절 없이 단번에 이룩한 성공은 이후 계속 도전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면역력이 없는 사람에게 오는 도전,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에게 오는 시련은 분명 더 힘겨울 것이다.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를 넘어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공부에 관한 많은 책들이 학생이 어떻게 공부해야 한다고만 할 뿐, 선생이 어떻게 가르쳐야 한다는 이야기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저자는 이런 경향을 부정적으로 본다고 잘라 말한다. 공부를 못 하는 원인과 책임을 전적으로 학생 탓으로 돌리는 듯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공부는 결국 학생 스스로 해야 한다. 하지만 학생이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이유가 가르치는 사람이나 그 방법에 있는 경우도 많다. 우리가 공부에 관해 논할 때 공부법과 교수법을 동시에 고민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자는 공부법과 교수법은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교수법이 상대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가르치는 데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글을 쓸 때 독자가 이해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이해하고 쓴 글인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가르치는 과정에서도 내가 이해하지 못하면 타인도 이해하지 못한다. 저자는 가르치는 사람이 얼마나 공부하고 이해하고 통찰했는가에 따라 수업의 질이 달라진다고 강조한다. 공부란 내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만큼 아는 것이다.
이런 생각의 연장선상에서 저자는 우리 교육의 질을 높이는 방법은 교수법, 즉 가르치는 방식을 바꾸는 데 있다고 조심스럽게 제언한다. 근본적으로 취업과 임금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 이상, 교육 제도가 바뀌더라도 또 다른 문제가 생겨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반면에 가르치는 사람이 바뀌는 것은 훨씬 실현 가능성이 큰 방법이다. 학창 시절,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들려준 이야기가 아직도 가슴속에 남아 있는 경험은 누구나 한 번씩 있다. 저자는 이렇듯 학생들의 사고에 혼을 불어넣는 일은 교육자만이 할 수 있다고 강조하다. 어떻게 수업을 진행할 것인가. 아이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할 것인가. 이런 관점에서 가르치는 사람들의 성찰이 끊임없이 이루어져야 교육 제도의 불완전함이 개선되고 학생들이 성장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다시 공부하는 노동자로

‘숨마 쿰 라우데’는 최우등이라는 의미로 유럽 대학의 성적 평가에 쓰이는 표현이다. 이 말은 타인과 비교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지금까지 거둔 성적 가운데 가장 우수함을 의미한다. 저자는 타인에 의해 매겨지는 성적으로 평가를 받지만, 공부는 자신이 어제보다 얼마만큼 더 성장했는지를 보여주는 가늠자라고 말한다. 설령 아직 ‘최우등’을 받지 못했다 하더라도 스스로 ‘나는 훌륭하다’라고 생각하면서 공부에 매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어렵고 지루한 공부를 시작한다면 자신을 당분간 섬에 가두는 일은 불가피한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섬을 어떻게 꾸미느냐는 전적으로 자신에게 달려 있다. 공부의 어려움과 지루함 속에도, 매일 그날이 그날 같은 따분한 생활 속에도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은 찾아온다. 저자는 그것이 행복이고 인생임을 깨닫고 즐기며 다시 공부할 힘을 얻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리고 자신은 다시 공부하는 노동자로 살며 진짜 공부를 시작하겠다고 밝힌다.

한국인 최초이자 동아시아 최초의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 변호사. 라틴어뿐 아니라 가톨릭교회를 통해 전승된 교회법에 관한 한 국내 최고 전문가다. 광주가톨릭대학교와 부산가톨릭대학교에서 학사와 석사과정을 마쳤다. 2001년 로마 유학길에 올라 교황청에서 설립한 라테란대학교에서 교회법 석사와 박사과정을 최우등(숨마 쿰 라우데)으로 졸업하고 로타 로마나 사법연수원을 통과해 변호사가 되었다. 이후 이탈리아 법무법인에서 일하며 한국과 로마를 오갔다.
2010년부터 2016년까지 서강대학교에서 진행한 〈라틴어 강의〉는 인근 대학생은 물론 외부인까지 청강하러 찾아오는 최고 명강의로 평가받은 바 있다. 이어 연세대 법무대학원에서 〈유럽법의 기원〉과 〈로마법 수업〉을 강의했다. 지은 책으로 『라틴어 수업』『로마법 수업』『법으로 읽는 유럽사』『그래도 꿈꿀 권리』『카르페 라틴어 한국어 사전』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교회법률 용어사전』 등이 있다.

목차

글을 시작하며_ 숨 쉬는 동안 나는 공부한다

1장 터널의 끝은 있다
2장 밑바닥을 흔드는 공부
3장 부모를 떠나십시오
4장 겸손한 사람이 공부를 잘한다
5장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의식하라
6장 몸을 가두고 그냥 하는 힘
7장 늑대가 울어도 먹이를 주지 마라
8장 메마른 땅을 적시는 비가 되어
9장 사람은 각자 자기 운명의 목수
10장 쉬운 선택을 하지 않는다
11장 기억의 정화, 흘러가게 두라
12장 공부하듯이 운동하라
13장 공부와 친구들
14장 깊이는 타인이 주지 않는다
15장 아는 만큼 설명한다
16장 공부는 매듭짓는 것이다
17장 인간이 장소를 꾸미지 장소가 인간을 꾸미지 않는다
18장 중간태로 살아도 좋다
19장 레 체드레, 죽는 날을 생각하는 오늘의 삶
20장 다시 나는 공부하는 노동자다

본문 중에서

어느 날, 한 제자로부터 문자메시지가 왔습니다.
“교수님, 이 지독하게 어둡고 힘든 터널의 끝은 과연 있을까요?”
이 한 문장을 읽고 저는 한참 생각에 잠겼습니다. 로마에서 학위와 변호사 시험을 준비하던 때가 떠올랐습니다. 제게 미래가 전혀 보이지 않던 시절이었지요. 가끔 장거리 이동을 위해 기차나 고속버스를 타면 터널을 지날 때마다 숨을 꾹 참고 있다가 빠져나가면 크게 내쉬곤 했습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당시에는 ‘힘들고 고통스러운 지금, 이 시간을 나는 어떻게든 버티고 있다’라는 생각에서 은연중에 나온 행동이었습니다.
제자의 질문을 받고 저는 가슴이 답답하여 쉽사리 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한두 마디로 답할 수 있을까요? 답을 빨리 할 수 없었던 이유는 터널이 하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전엔 구불구불한 길에 간간이 터널이 있었지만 요즘 고속도로를 달려보면 터널이 정말 많습니다. 돈도 없고 기술도 부족하던 시절엔 어쩌다 터널 하나를 만들었다면, 요즘은 자본이 풍부하고 기술이 발달하여 산을 뚫어 여러 개의 터널을 통과하게 했습니다. 터널이 많아지고 길어졌어요. 젊은이들이 시대를 맞는 역설이 여기 있습니다. -18-19쪽

요즘에는 한 가정에 자녀가 한두 명 안팎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녀들에게 어릴 때부터 뭐든 다 해주는 평범한 가정들이 많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사람은, 안타깝게도 하고 싶은 일이 없거나 아니면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지 않아 쉽게 포기하곤 합니다. 반대로 간절히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부모의 도움을 받을 수 없어 지레 포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모두 부모로부터 스스로를 독립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겪는 일입니다. 그 결과에 대해 계속 부모를 원망하고 탓한다면 누구 손해일까요?
부모에게서 완전히 독립하여 온전히 자기 힘으로 살아가고자 힘써야 합니다. 현실을 회피하지 않고 미래를 생각하며 자신이 선택한 삶을 위해 치열하게 노력해야 합니다. 부모의 능력이 곧 내 능력은 아니라고 선을 긋고 나면 공부든 일이든 반드시 해야 하는 ‘절실’하고 ‘절박’한 동기가 생깁니다. -57쪽

겨울 동안 나무는 잎은 남아 있지 않지만 죽은 게 아닙니다. 다시 잎을 피울 때까지 묵묵히 찬바람을 견디며 준비하고 있는 겁니다. 움직이지 않는 나무가 사람보다 자기관리를 더 잘합니다. 세찬 바람에 스스로 가지치기도 하고, 한 해 동안 풍성하게 키웠던 나뭇잎도 미련 없이 떨어뜨립니다. 둘러싼 껍질이 단단해지고 때로 불필요한 건 스스로 걷어냅니다. 사람이 지루하고 지난한 공부를 해나가는 시간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가지에 얼마 달려 있지 않은 나뭇잎에 집착하고 그걸 공부하지 않는 자신의 보호막으로 삼습니다. 그보다는 “내 능력이 좀처럼 향상이 되지 않는데 어떻게 하면 더 나아질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해야 합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인정하는 데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허세를 부리면 공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나지 않을 거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허세가 공부하지 않고 있음을 방증합니다. ‘실제의 나’와 ‘내가 평가하는 나’ 사이의 간극을 모르거나 혹은 모른 척하는 건데요. 그러다가 남이 이룬 걸 부러워하고 시샘하는 못난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지인들이 잘됐다는 이야기를 듣거나 소식을 접할 때 저는 부러워하거나 혹은 질투하지 않고 행간에 숨겨진 그들의 노력과 수고를 생각합니다. 그러면 마음이 편해지고 저의 태도를 생각하게 됩니다. -76-77쪽

하루 공부한 뒤 며칠씩 공부를 손에서 놓는다면 언제 어떻게 공부하는 게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지 알 수 없습니다. 무조건 규칙적으로 뭔가를 해봐야 자신의 공부법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 수 있고 몰랐던 습관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머리로 공부하려 들지 말고 몸이 공부할 수 있게끔 이끌어주어야 합니다. 일정한 시간에 책상에 앉고 계획표를 짜서 ‘몸이 그걸 기억할 수 있을 때까지’ 차근차근 실천해야 합니다. 벼락치기가 가능할 때는 머리로 공부하는 거로 충분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바뀌어 몸으로 공부해야 합니다. 매일 습관으로 쌓인 공부가 그 사람의 미래가 됩니다. 습관을 만들기 위해선 자신의 생활 방식과 성향을 파악해야 합니다. 처음부터 실현 가능성이 낮은 계획을 세우고 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의기소침할 필요 없습니다. 내가 어느 시간에 더 집중이 잘 되고 어느 시간에 집중이 안 되는지 파악해야 합니다. 몰입을 방해하는 요인이 시간인지, 공간인지, 습관인지를 세심하게 살펴야 해요. -102쪽

학교 안팎에서 많은 학생이 제게 “교수님, 변호사 시험은 어떻게 준비하셨어요? 어떻게 해야 시험을 잘 볼 수 있어요?”라고 묻곤 합니다. 그때마다 저는 공부는 100퍼센트 준비한 가운데 20퍼센트를 발휘해서 좋은 성적을 받거나 시험에 합격하는 거라 대답합니다. 100퍼센트 완벽하게 준비하면 어떤 부분에서 20퍼센트를 골라 문제를 내도 좋은 결과가 나오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60퍼센트 정도만 공부하고는 100퍼센트의 실력을 발휘하기를 기대합니다. 공부하는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생각의 오류입니다. 어쩌다 좋은 결과를 낼 수는 있지만 그런 일이 계속되기는 힘들고, 그런 패턴으로 공부하면 결국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공부가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공부의 양이 땅을 흠뻑 적시고도 남아 흘러내리는 빗물과 같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125쪽

기억의 정화는 몸을 가둔 채로 공부하면서도 가장 자유로울 수 있는 방법입니다. 정신이 가장 자유로울 때는 역설적으로 몸을 가두었을 때인 듯합니다. 전쟁 중에 포로로 감옥에 갇혀서도 영혼이 자유로운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나비가 자유롭게 날기 위해서는 애벌레 시절과 번데기 시절에 몸을 가두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공부뿐 아니라 무언가 사람의 정신세계가 한 단계 성장하고 고양되기 위해서는 그렇게 자유롭지 못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대인들은 인간 존재를 영적으로 정화하고, 불멸과 영생에 도달하기 위한 의식으로 동틀 녘, 정오, 일몰, 이렇게 하루 세 번 몸을 씻었다고 합니다. 공부하는 사람들도 틈이 날 때마다 부정적인 기억을 자주 씻어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명상이나 기도는 그런 면에서 공부하는 사람에게 아주 좋은 의식입니다. -187쪽

사자처럼 똑똑하고 타고난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도 목표를 위해서는 포기해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저는 사자처럼 능력 있는 사람도 아니었기 때문에 포기해야 할 게 더 많았습니다. 제가 유학하면서 가졌던 단순한 하루 일과표는 많은 것들을 포기한 결과물이었습니다. 좋아하는 것도 생각하지 않았고 여행이나 모임, 교류를 위한 자리도 대부분 포기했습니다. 그러나 하루 일과표를 단순하게 짜면서 공부에 대한 집중력은 현저하게 높아졌습니다. 사람들과 친교하는 시간은 없었지만 운동하고 휴식할 시간은 꼭 넣는 식으로 일과표를 짜서 리듬을 깨뜨리지 않고 꾸준히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친구를 잠시 포기하더라도 도저히 회복할 수 없는 관계로 망가뜨리지만 않는다면 언제든 다시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만나지 않아도 늘 그리워하는 사이, 만나지 않아도 유대관계가 돈독한 사이, 그게 친구 사이지요. 그런 관계가 가능하다면 진짜 친구이고, 당신의 선택을 지지하고 응원해줄 겁니다. -216쪽

라틴어의 중간태를 오늘날의 맥락에서 설명한다면, ‘무엇 같은 상태’, ‘무엇이 되어가는 과정’, ‘무엇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상태’ 정도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흔히 “~같아요”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자기 주관이 없다고 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에서 어쩌면 ‘중간태’는 피할 수 없지 않을까요? 시간은 항상 흐르고 있고 그것이 꼭 변화일 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 우리는 자신을 둘러싼 여러 다양한 상황과 과정의 중간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지요. 결론이나 목적에 도달했다고 생각했더라도 그것 또한 얼마든지 더 큰 다른 과정 속의 어딘가가 될 수 있습니다. 인간이 언제나 과정 속에 놓인 존재라면 ‘내가 무엇일 수도, 아닐 수도 있는’ 그런 자각이 꼭 잘못된 건 아닙니다.
공부하다 보면 무엇일 수도, 아닐 수도 있는 자기 자신을 수없이 만나게 됩니다. 그렇다고 명확하지 않고 어정쩡한 상태가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 권리가 있습니다. 저는 공부뿐 아니라 생각도, 입장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왜 꼭 어느 한쪽에 속해야 합니까? 우리는 도리어 어느 한쪽에 완벽하게 속하기보다는 그곳으로 향하는 과정의 방향성 위에 있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이런 경우 우리는 자신이 향하지 않은 곳에 대한 비판적 시각뿐만 아니라 내가 향하는 곳에 대해서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기게 됩니다. 우리는 종종 중간을 ‘기회주의’라 여기며, 어느 한쪽에 서도록 강요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일상의 많은 선택지 중 우리가 ‘명백하고 확실하게 치우쳐 규정된 한곳’에 위치할 상황만이 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292-293쪽